7월의 짧았던 장마가 뒤늦게 심통이라도 났는지 몇 일 밤낮동안 굵은 빗방울을 뿌렸습니다.
8월의 찌는 듯한 더위에 비 소식을 그렇게도 그리워했건만 단 몇 일 동안의 빗줄기에도 햇볕이 그리워지네요.
비가 잠시 그친 사이 곡식들이 자라고 있는 논이며 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러보았지만 결국 키가 큰 수수와 기장들은 모두 쓰러져 있네요.
한창 열매가 맺히는 시기에 이렇게 되어 있으니 걱정이 앞서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밭작물이라 조금만 손을 보면 수확에 큰 지장은 없을 듯 보였습니다.
식초의 원료가 되는 곡식이 5가지 이상이 되니 작목반을 구성하여 한 농가씩 한 작물을 맡아 재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벼 작물이야 워낙 사용량이 많아 작목반 전체가 재배를 하지만 수수와 기장 등 잡곡은 그리 양이 많지 않으니 한 농가씩 한 작물을 맡았지요.
“에고~ 다 쓰러졌어“
수수를 맡아 기르기로 한 이웃동네 형님은 나를 보더니 그렇게 푸념을 합니다.곡식이 잘 맺혀 머리 쪽이 무거우니 지난 태풍과 소낙비에 견디지 못한 것이지요.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살피는데 어디서 왔는지 까만 메뚜기 같이 생긴 곤충한마리가 책상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잠시 서류를 놓고 낮선 그놈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보는 이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꼼짝을 않고 있네요.
손을 뻗어 잡으려 하니 폴짝뛰며 오히려 손등에 올라앉는 맹랑함을 보입니다.
귀뚜라미네요.몇 일 전부터 작업장 내에서 그렇게 울어대던 놈들 중 하나일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밤이 되면 열어놓은 창문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귀뚜라미 소리에 곤한 잠을 청하곤 합니다.
아! 가을
그렇게 뜨겁던 날들도 갑자기 아득하게 느껴집니다.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에서부터 땀은 범벅이 되고 그 뜨거운 여름 한낮에 항아리를 묻었던 일이며 오곡을 증자하여 술을 안치고 여과하는 일, 불과 한나절이었지만 아이들과 가까운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던 일, 이러 저러한 일들이 2010년의 여름을 장식하고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항상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난 계절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오는 계절에 대한 기대감이 묘하게 섞여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요.한낮엔 아직 가는 여름의 무더위가 그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추석도 이제 성큼 다가 와 있네요.벌초 뿐 아니라 작업장 주위에 무성하게 자란 잔디와 잡초생각에 오늘은 성능 좋은 예초기를 알아보러 시장에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