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늘 우리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예천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예천초등학교, 예천중학교, 대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얘기다. 그 시절 누구나 그러했듯이 책값을 마련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고추를 따서 포대를 자전거에 실고, 예천시장에 가서 판 뒤 학교에 등교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시장 아주머니가 늘 생각난다. 정말 고마웠다. 나의 학업의 든든한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예천은 어린 시절 추억덩어리였다.
초·중학교 시절 한천 냇가에서 친구들과 목욕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집으로 가는 것이 여름철 하나의 코스였다. 지금도 가끔 친구들과 한천 냇가를 찾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재연’하기도 한다.
고향은 어머니다.
우리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허리가 휠 만큼 일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인자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우리의 훌륭한 스승이셨다.
그때 우린 참 가난했다.
가난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다. 가난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 가난은 이제 예천의 아들로 고향을 그리워하고, 봉사하게 만드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친구’가 아닐까.
고향 예천은 나의 삶의 원동력이다.
대학 생활과 학군 장교로 군대생활을 마치고, 공직의 길로 들어섰을 때 그 시작은 바로 고향 예천이었다. 경상북도예산담당관, 예천부군수, 경북도청신도시 본부장 등 공직 34년을 무사히 마치게 해준 고향 예천이 늘 감사하다.
예천이 나를, 우리를 키웠다.
예천의 은혜, 이제 갚는 길을 생각해 볼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추석이다.
고향이 더욱 간절해지고 그리워지는 때다.
코로나 19로 몸과 마음이 무척 지쳐 있다.
그렇기에 추석의 고향은 우리를 보듬고, 치유해 준다.
사랑과 정성으로 추석을 따뜻하게 보내자.
코로나 19가 빨리 끝나 우리 모두가 건강한 생활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예전처럼 가족·친지들과 함께하기가 어렵겠지만 멀리 있어도 따뜻한 마음과 건강을 전하는 추석이길 기원한다.
휘영청 보름달이 우리의 마음을 밝게 비추는 추석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