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2일는 약포 정탁 선생 탄신 495주년 되는 날이다.
약포 정탁 선생(1526~1605)은 예천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선생은 충효의 고장 예천의 표상이다. 충의(忠義)와 청렴(淸廉)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선생은 임진왜란 때 명장 이순신, 곽재우를 천거하신 분이다.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모함으로 죽을 고비를 맞았을 때 목숨을 걸고 장군의 신원을 상소해 다시 전장에 나아가 명랑대첩의 큰 공을 세우게 한 명재상이다.
그때 선생이 올린 상소문 신구차는 지금도 보물로 지정돼 내려오고 있으며 ‘충’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선생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이자 당쟁에 휘말리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올곧은 신하였다.
선생이 46년 공직을 마치고 낙향할 때 선조가 공을 치하하기 위해 많은 재물을 내리려 했으나 국난을 겪은 어려운 시기라며 모두 사양했다고 한다. 예천에 내려올 때 집이 없어 처갓집에서 생활할 정도로 청빈했다.
약포의 부친과 조부는 덕을 숨기고 벼슬을 하지 않은 청빈가 출신이다. 선생 자신도 이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조·형조판서, 우의정, 좌의정까지 지낸 정승에게 국가가 집을 지어주는 것이 관례인데, 이 마저도 거절된 선생의 청렴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생은 고평향약을 만들어 주민들과 힘을 모아 고평들을 개간했다.
고평도계약문을 만들어 지역 사회에 규율과 공동체 의식을 심었다. 예천향약의 시초가 됐다.
선생의 충의와 청렴 사상은 오늘날 대한민국 공직자가 가져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예천의 공직자는 선생의 충의와 청렴을 신념으로 여기고 공직 생활에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선생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전승·발전시켜야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선생의 위대한 업적이 저평가되고, 덜 알려진 측면이 적잖다.
선생의 유물은 초상, 상소문, 임진기록 등 보물만 10개나 된다.
친필시가 있는 선몽대, 청주 정씨 재실, 도정서원, 정충사 등에서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지금은 예천박물관에 유물을 옮겨 전시하고 있으며, 선생의 유물을 통해 예천인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되새기고 있다.
선생의 유산을 예천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키우자.
선생의 위패를 모신 도정서원은 내성천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풍광이 뛰어나다.
선생의 묘, 재실, 선몽대, 도정서원, 읍호정, 정충사, 예천박물관 등을 잇는 관광루트를 체계화해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
선생의 학문과 문학, 사상을 널리 알리는 행사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