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면에서는 지난 4월 28일부터 진행했던 보문면 수계리 보문사 부근 장윤덕 의병장의 묘소 주변정비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번에 정비를 마친 곳은 보문면 수계리 보문사 부근에 위치한 장윤덕 의병장 묘역 진입로로 그동안 묘역 진입로가 없어 참배객들이 많은 불편을 겪어왔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장윤덕 의병장의 명예와 자긍심을 고취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국민의 귀감으로 삼기위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계단길이 25m, 폭 2.5m의 대리석 계단과 안내판을 설치를 완료했다.
장윤덕(1872. 7. 6 ~ 1907. 9. 16)은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본관은 단양, 자는 원숙, 호는 성암이며,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민중의 반일 의식을 고취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1907년 4월에는 이등방문과 매국노 처단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으나 배신자의 밀고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각처의 의사들에게 국난을 호소하는 격문을 돌려 300여 명의 의병을 규합해 의병장으로서 예천.용궁.풍기.봉화.문경 등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그해 9월 이강년?민긍호 의진과 연합하여 1,0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문경 갈평리에서 일본경찰대 및 수비대와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고 이후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상주읍을 공격해 일본인 자위단과 교전하던 중 총상을 입고 붙잡혀 혹독한 고문에도 스스로 혀를 끊고 항거하다가 1907년 9월 16일 상주군 함창면 구항리 뒷산에서 총살을 당하니 향년 35세의 일기로 조국 앞에 거룩한 생을 마쳤다.
그 후 지금의 위치에 유해를 모시고 선생의 구국 활동과 항일투쟁 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이등방문과 매국노 처단을 시도하는 등의 공적을 인정받아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중진 보문면장은 “장윤덕 의병장은 일제의 무단 통치에 신음하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고귀한 목숨까지 바치신 분으로 항일 독립투쟁 발자취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아 있다”며 “고인의 고귀한 희생을 되새기며 감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