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도 지난 3월 초순 벼랑끝에서 곡예를 하듯 오락가락하는 꽃샘추위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꽃불을 쫒아 봄의 여정을 떠났다.
무언가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기엔 터져버릴 것 만 같고 그냥 참고 넘기
기엔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그런 계절이다. 하늘빛 하나에도 햇살 하나에
도 바람하나에도 새잎 하나에도 모든 것들이 새롭고 경이로운 계절이다.
새벽 7시 숨막히게 내달리던 버스는 육지가 되어버린 사천 연륙교를 지
나 10시 30분경 남해에 도착했다.
남해군 이동면 상주리에 소재한 금산(錦山)은 해발 681m의 수려한 명산
으로, 산 전체가 기암괴석과 울창한 나무로 덮여 있어 예로부터 소금강으
로 불린 남해안 최고의 경승지이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조망대, 크고 웅장
한 바위인 상사암, 여덟 개의 바위 모습이 신선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팔
선대, 문장암, 대장봉 등은‘금산의 38경’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모습
을 자랑한다.
특히 신라 신문왕 3년(683)에 세웠다는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 기도
도량의 하나로 연일 전국각지에서 불교신도들이 찾는 유명한 기도처다.
금산 산행은 상주리 매표소에서 시작하여 쌍홍문을 지나 상사바위~단군성
전~금산정상~보리암~이동면 북곡 저수지 구간을 3시간여 등반했다.
유난히 심한 겨울가뭄으로 금산 등산로의 음수대는 모조리 말라 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 가운데 산을 오른지 1시간여 살점을 다 도려낸 쾡한 몰골의
쌍홍문은 흡사 해골 보물섬 같았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처럼 쑹 뚤린 돌문
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산한 분위기는 단번에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있다.
쌍홍문에서 잠시 쉬면서 바라본 한려해상국립공원은 한올 한올 비단에
수를 놓듯 점점이 흩뿌려진 아름다운 모습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듯
했다.
쌀쌀한 꽃샘바람에 옷깃을 여미어야 했지만 와락 안기고 싶을만큼 잉크
를 잔뜩 풀어놓은 듯한 쪽빛바다와 끝없이 내달리던 산맥이 멈추어 우뚝
솟은 금산의 기암괴석은 사나이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푸른 화선지에 포개어 지듯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빚어낸 풍경들은 뽀얀
속살을 드러낸 여인을 보는 것 같았다. 미동조차 않던 내 마음도 알싸한
춘풍에 동요된 것일까?
해풍에 고운 머릿결 빗으며 다가오는 금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성계가 개국의 꿈을 안고 백일기도를 올린후 비단산이란 산
이름을 하사하였다는 금산(錦山).
물비늘 뚝뚝 흘리며 한편의 서정시처럼 우뚝 솟은 비단의 산 금산 정상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퍽이나 낭만적이었다.
푸른 바람이 미풍처럼 불어오고 열두폭 병풍을 두른 듯한 기암괴석과 속
세의 관념을 벗어버린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푸른 섬과 푸른 바다
는 천하제일망해경관을 자랑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압권이었다.
모처럼 떠난 남도여행, 아름다운 산 금산을 뒤로하고 잡아끄는 손길 뿌리
치며 돌아서는 발길위로 꽃잎이 통체로 지고 있었다.
그것은 선운사의 동백꽃도 아니요, 섬진강변의 매화도 아니고 지리산 어
느 자락에 핀 산수유꽃도 아니었다.
봄의 도화지에 무수히 그려보고 싶었던 아프도록 넘쳐흐르는 그리움 덩어
리였다. 긴 겨울 가슴앓이 형벌로 비어버린 가슴에 가득 담고 싶었던 금산
은 잠자는 내 영혼을 송두리체 흔들어 깨웠다.
2007. 3. 11.
자료제공:예천읍 사무소 장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