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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미FTA 타결 뒤엔 다들 죽고 싶은 심정이에요"

예천인터넷방송   |   송고 : 2007-04-07 07:58:41

농민회 간부로 활동하던 이씨가 만취상태로 귀가해 이웃집 노씨 집을 찾아 한미FTA 타결로 농촌이 어렵게 됐다며 하소연 하던 중 노씨가 자신 생각과 다른 말 하는데 격분하여……’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한우리. 40여 가구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에 3일 밤 ‘총기 난사’라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초기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술자리에서 ‘격분’은 없었다는 게 이웃들의 이야기다.


△경북예천 총기난사 사건현장인 예천군 한어리 마을 고 노영삼 씨의 집은 수사보존상태에 놓여 있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마을주민인 장호(73)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소문난 친한 젊은 사람들끼리 그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가들이 얼마나 잘 했는데. 국민학교, 중학교 폐교돼 버려서 애들 싣다 주고, 애들도 똑같이 둘씩둘씩 있었고. 그케 사이가 좋은데 이런 일이 어디 있겠나. 원한 관계나 사이가 안 좋으면 이해라도 되지. 인정이 그리 좋은 사람들이 그리 됐으니…….”

마을회관 옆에서 소 세 마리를 키우는 장호(73)씨는 “평소 볼 수 없었던 순찰차까지 마을에 왔다 갔다 하니 남사스러워 죽겠다”며, 그 이야기는 잘 모르니 그만 하잖다. “낮에 다 같이 구경 갔다 왔어~ 저기
삼천포로. 갔다 옹께 그런 일이 있어 얼마나 놀랬는데…….”

장씨 할아버지가 삼천포로 꽃놀이 갔다 온 그 날 밤, 마을에서 촉망받던 면지회장 A씨(44)가 형님처럼 모시던 이웃 B씨(50)와 다른 마을(송곡리) 친구 C씨(43)에게 유해조수 수렵용 공기총을 발포, B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C씨가 우측 안면을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날 밤, 이 마을에선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나...언쟁은 없었다

4월 3일,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을 데리러 대구에 갔던 B씨의 아내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있을 아들을 생각하며 음식을 장만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B씨는 A씨와 함께 음식과 술을 나누고, 자연스레 ‘한미FTA 협상 타결로 인한 농촌 경제사회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주제를 갖고 심도 있는 토론을 했는지, 그냥 농담을 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입장이 동일했는지, 의견이 불일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이 1년 전부터 이미 한미FTA를 주제로, 5년여 전부터는 WTO를 주제로 목소리를 높여 왔다는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그 둘의 목소리는 서로에게가 아닌 정부를 향한 것이었고, 또 둘은 농민회 활동을 함께 하며 여러 번의 상경투쟁도 진행했었다.

△A씨의 친구인 우병국씨를 만나 경북예천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경위를 들었다. 우씨는 총상을 입은 유일한 목격자 이도희씨의 진술을 들은 인물이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참 안타까운 일이죠. 안 일어났어야 할 일인데…….(눈물) 참 이해할 수 없는 게, A씨와 B씨는 친형제보다 더 친하게 지냈었거든요.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B씨의 다 큰 딸내미(대학생)도 A씨 집에서 놀다 시간 늦으면 자고 가고(집이 불과 2~3분 거리였음에도), 특별한 음식이라도 있으면 불러서 같이 먹고, 참 격의 없이 지내던 사이였는데…….”

사건 당사자들과 절친했던 우병국(44)씨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라며 말을 이었다. 우씨는 총상을 입은 유일한 목격자 C씨의 진술을 직접 들은 인물이었다.

“군에서 휴가 나왔다는 B씨 아들내미도 큰 소리 나는 걸 전혀 못 들었다 카던데. 총 소리 나고서야 뭔 일인가 하고 나갔다가 갈비뼈에 총 맞았지, 지 아버지하고 A씨하고 만취할 정도로 술 마시는 동안에도 옆방에서 싸우는 소리라곤 한 번 듣지도 못 했다 카더만. 나도 00기자가 인터뷰 해 갔는데 언쟁했다느니, 논쟁했다느니, 싸웠다는 식으로 있지도 않은 말을 써 놓고, 어찌 그러는지…….”

우씨는 지난 3월 25일부터 한미FTA 협상이 타결됐던 4월 2일까지 연이은 상경투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예천에 내려왔었다. “2일 새벽 5시쯤이었죠. 예천에 돌아왔는데, A씨가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다’며 점심을 한 그릇 산다더라고요. 계속 상경투쟁을 같이 했는데, 1일에만 같이 못 올라갔었거든요.”

△경북예천 총기난사 사건은 고인이 된 B씨의 집에서 벌어졌다. 예천군 한어리 마을은 40구의 수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로, 마을 주변 곳곳에 흉가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2일 점심식사 시간. 식당 한 쪽의 TV에서는 ‘FTA 타결’ 관련 뉴스특보가 흘러 나왔고, 두 사람은 ‘삼계탕’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소주를 한 병 시켰다. 농민들로서는 뉴스에서 나오는 소리가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A씨가 ‘이제 어떻게 하냐’고 하는데, (아무리 축산농업 선배라고 해도) 낸들 뭘 아나. 정부에서 우리같이 힘없는 농민들 다 죽으라고 하는데……. 그래도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나’라고 하고는 헤어졌지.”

그 날 오후 우씨는 ‘송아지가 탈수 증세가 있으니 도와 달라’는 A씨의 전화를 받고, A씨의 집으로 향했다. A씨 부인한테는 ‘점심 한 끼 사주고는 이리 고생시킨다’고 농담도 한 마디 건넸다. 그리곤 또 한미FTA 얘기가 이어졌다.

“우린 목숨이 FTA에 달린 거라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토로하는 수밖에요. 다섯 시 쯤 소 밥 주려고 헤어졌는데, 밤 11시였던가 또 전화가 왔어요.”

4월 1일 상경투쟁 뒤 2일 새벽 5시에 귀향한 우씨는 잠을 몇 시간 못 자서 피곤했지만 “절친한 사람인데 야박하게 굴 수 없어서” 소주를 한 잔 했다. 역시 또 한미FTA 얘기가 이어졌다. TV에 나와 토론하는 사람들의 한미FTA 얘기가 아닌, ‘소 값 똥 값 되고, 우리 이제 어떻게 사냐’는 현실의 얘기였다.

그 다음 날, 사건 당일 점심에도, 또 저녁에도, 우씨는 A씨와 만났다. A씨는 그 자리에서 우씨에게 ‘축산환경 악화됐으니, 원자재 값 절약하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밤에 맥주를 마시며 대책을 얘기하고 집에 갔는데, 새벽 한 시 반께 동기인 김화종(44)씨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야, A가 사고 쳤어.”

수화기 속 김화종씨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리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세상, 이렇게 사느니 뭐 하노"

격분도, 언쟁도 없었다. 오히려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죽자’라는 얘기가 마지막이었다. 두 번째 총을 쏘기 전 장전을 하며, “이리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세상, 이렇게 사느니 뭐 하노, 우리 다 같이 죽어삐자”라는 말을 했다는 게 우씨가 들은 유일한 목격자 C씨의 말이었다. C씨(송곡리)가 응급실로 실려 가자마자 달려갔던 우씨는 이 '농담 같은 이야기'에 연신 눈물을 훔쳤다.

△ 저녁 어스름이 짙어지는 시간 주민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마을 주민 한분은 논에 뿌릴 비료포대를 가리키며 "이제 곧 일손이 바빠질 건데 비명횡사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A씨는 아이엠에프(IMF) 한파에 밀려 귀농한 사람이었다. 아이엠에프 체제 전에는 대구에서 용접기 생산업체를 경영했었다. 과수농사를 짓다가 WTO 협정으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밭을 개간해 쌀농사로 전환했던 A씨는 쌀값폭락으로 또 한 번 좌절했다. 정부의 추곡수매제 폐지는 설상가상이었다.

A씨가 대체작물을 저울질 하다가 선택한 건 한우 농사. 05년 12월부터 송아지를 들여오기 시작해 06년 1월엔 암소까지 총 50여 마리에 달했다. 그 규모의 축사가 보통 100~120평 정도 되니, 축사 건축에만 4~5천만원을 소비한 셈이었다. 쌀농사도 짓고 있었으니, 부산물(짚)을 소여물로 하면 여물 값도 줄일 수 있겠다는 판단도 한우 농사를 선택하는데 일정 부분 작용했다.

그런데, 소를 들여 온 지 채 한 달도 안 된 2월 초. A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는다. 바로 ‘한미FTA 협상을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였다. 그 때부터 1년 넘는 기간 동안 A씨는 안절부절 못했다.

협상 초반 ‘소 수입 안 하겠다’는 농림부장관의 담화는 ‘
광우병 소 수입 안 하겠다’로 바뀌고, 결국에는 ‘소 수입 하겠다’는 것으로 바뀐 채 한미FTA 협상은 타결됐다. 그 동안 소 값은 한 장(5일장)에 20~30만원씩 폭락할 때도 있었고, 결국 A씨는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이튿날(3일) 밤, 가족같이 지냈던, 친형제보다 더 친하게 지냈던 이웃 형과 친구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거세우는 30개월 사육합니다. 5~6개월 된 황송아지를 사 오니까 꼬박 2년을 키워야 팔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A씨는 올 12월이나 내년 1월이 출하시기였습니다. 여태 사료비만 들어가고 소득은 하나도 없었던 거죠. 한 집안의 가장이라고 스트레스 표출도 못 하고, 한미FTA 협상단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A씨는 웃어른도 모시고 아이들도 한 지붕 아래서 다함께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에겐 한미FTA 협상단의 움직임이 그만큼 더 절박했다. ‘나랏님께 그 절박함을 전하고자’ 상경투쟁과 도심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했던 그였다.

“타결이 되네 안 되네 하다가 국회의원들이 단식도 하고, 반대여론도 커지고, 기대감이 있었는데, 게다가 24시간 연장해서 더 기대했으니 절망감은 더 커진 거죠. 제가 그 속을 어찌 알겠냐마는, 술 만취돼 가니까 자포자기 쪽으로 안 갔나 싶어요. 그래도 혼자 그랬으면 덜 애석한데, 본의 아니게 형처럼 따르던 B씨와 자기 말이면 언제든 따라주는 친구한테까지, 그리고 B씨 아들한테까지 그랬으니, 완전히 이성을 잃지 않았는가 싶네요.”

△한숨을 쉬며 허털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지켜보는 예천군 농민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그야말로 국가에서 살인한 거지...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었다"

한미FTA 협상 타결 당일 택시노동자 허세욱씨의 분신 뒤 ‘이성 잃은’ 한미FTA 타결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협상 전부터 진보진영에서는 ‘한미FTA는 노동자 농민을 다 죽이는 협상’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제 타결됐으니 노동자 농민이 다 죽는 것만 남은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총기 난사는 타결 이튿날의 일이었다.

이웃 농민들의 마음도 같다. “정부가 선량한 농민 이래 만들었다고 봐요. 그렇다고 법이 그런 거 봐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병국씨의 말이었다.

과수농사를 짓고 있는 이현부(50)씨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야말로 국가에서 살인한 거지. 한미FTA 이후 전번(허세욱씨)이 처음이고, 이번이 두 번째 아닙니까.”

이씨는 진지하게 또박또박 짚어 나갔다. “농촌이 지금까지 죽어라죽어라 했지만 이번 FTA는 가냘픈 숨 쉬고 있던 걸 목 죈 거예요.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었죠.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유행처럼 일어날 겁니다. 대통령 등 국가에서도 이런 거 예상하고 감수하고 했을긴데…….”

밭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고일(42)씨도 마찬가지의 소견. “근래에 소를 한 사람은
지금 죽고 싶은 심정일 거예요.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한 마리 값이 돈 백만원씩 떨어지는 걸 보니까. 여유 돈 있는 사람은 괜찮은데, 다른 거 할 거 없어 우사 짓고 그런 사람들은 허탈하겠죠. 벼농사는 생산비도 안 나오고, 소농사는 광우병에 막혀 그나마 좀 나았는데 말이에요.”

△경북예천 총기난사 사건현장인 예천군 한어리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의 마을이다.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으며, 저녁 어스름이 짙어지는 시간 주민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순찰차가 들어온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사건의 가해자인 A씨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생목숨 끊는 걸 어떻게 봐요. 한 목숨이라도 살려야죠."

“한 번도 없던 일이, 그 작은 농촌 마을에,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생겼으니, 다들 신경이 날카롭지.” 인심 좋게 기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커피를 대접한 ‘이웃집’ 장씨 할아버지는 심각한 이야기에 더듬더듬 말하면서도 여전히 친절했다.

듣도 보도 못한 한미FTA 협상 타결 뒤, 작은 농촌 마을에 한 번도 없던 일이 생겼고, 덕분에 친구들도 바빠졌다. 마을에 있던 초·중학교 폐교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매일 아침 다른 학교로 아이들을 등·하교 시키고 있었다. 버스도 두 시간에 한 번씩 하루 6편 밖에 없어서 자가용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그 집에 아~들은 학교에 보내야 하지 않겠나”

“난 개 밥 주러 가야 한다”

“소는 니가 알아서 해라”

“가는 아직도 연락 없지?”

“…….”

사건이 있던 날 새벽. A씨의 친구들은 동이 터 올 때까지 근처를 헤집고 다녔다. 친구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부상당한 상황에, 또 다른 친구 ‘A씨까지 죽는 꼴은 못 보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생목숨 끊는 걸 어떻게 봐요. 한미FTA 타결 뒤엔 다들 죽고 싶은 심정인 걸. 한 목숨이라도 살리려고, 자수를 권유하려고 인근 동네를 차로 다니면서 외진 데는 다 찾아 봤어요. 그 놈 갈만한 곳은 다 가 봤는데.”

눈물을 훔치던 우씨의 전화벨이 울리고, 친구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경찰서 정보과장에게 전화 온 건데, 자기들도 아직 못 찾았다네요. 낡은 화물차 타고 갔으니 차라도 금방 발견될 텐데, 어디 갔는지……. 전국 수배 상황인데도 아직도 못 찾으니 참. FTA가 뭔지 그걸로 또 사람이 삶의 의욕조차 잃어야 하는지.”

친구들은 오늘도 A씨를 찾아 나설 예정이다.

“한 목숨이라도 살려야죠.”

‘한 목숨이라도 살린다’. 이것이 정부 관료와 농민의 가장 큰 인식의 차이 아닐까.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의 경진교에는 아직도 ‘한미FTA 반대’라고 적힌 노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 추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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