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락원 장로님, 부르기만 해도 정다운 그 이름 오늘이 마지막이군요.
바람처럼 구름처럼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 소천하셨다는 부고를 듣고 달이 진 듯, 별이 떨어진 듯이 허망한 마음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도처에서 하던 일손을 놓고 황급히 달려와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빈소를 메우고 엎드려 소리 없이 흐느끼는 소리 들으셨습니까.
손자 낳게 해 달라는 서원기도문을 죽마고우에게 보여주며 지성 기도 끝에 난 손자가 이제 입학을 앞두고 있지요. 따뜻한 봄날 고사리 같은 손자 손잡고 입학식에 가 주시지 않고 가신단 말입니까.
오래살고 싶은 마음 누구인들 없으리오마는 4년여의 투병생활을 덤으로 받았으니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하시며 늘 밝은 웃음을 짓고 별일 없는 듯이 모든 이를 대하셨던 강 장로님.
임종도 그렇게 평온하게 맞으셨다니 천국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을 보신 것이라 믿습니다.
인생 칠팔십, 정한 이치가 한탄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인격의 향기를 풍기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이제 금곡교회 교우들은 신앙이 약해질 때 누굴 의지하고, 예천인들은 삶이 외로워질 때 누굴 찾아가야 합니까.
돌이켜보면 금곡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1960, 70년대 반사(班師)를 하시던 청년 강 락원 집사님은 코흘리개 철부지 아동들에게 소년 요셉 이야기를 힘차게 외쳤습니다.
모든 어린이가 애굽(이집트)의 요셉 이야기에 흠뻑 빠지는 그 모습 이젠 아련한 추억이군요. 훗날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힘의 원천이 됐습니다.
늘 즐겨 부르시던 ‘이 몸의 소망 무엔가…’ ‘복의 근원 강림하사…’ 이제 그 청아한 찬송가 소리, 흐르는 물결 같은 낭랑한 기도 다시는 들을 수 없어 애석합니다.
강 장로님의 덕망에 세상 사람들도 감동하여 “강 장로는 정말 예수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인내하고 양보하셨습니까.
세상사람 아무리 무례해도 예로써 대하셨고 아무리 날카로운 성정(性情)으로 덤벼도 너그러이 대해 주셨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도 청렴의 대명사였음은 예천고을 사람들이 다 압니다. 뒤처진 동료들에게 당신 앞자리를 양보했습니다.
가진 재산을 때마다 일마다 교회공동체에 헌금하고 남긴 재산이 시골집 한 채 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습니다. 강 장로님의 진정한 재산은 마지막 남은 문전옥답 네 마지기마저 바쳐 지은 예배당과 소담하게 맺은 5남매로 그 어떤 부자보다 부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주님께서 1941년부터 2012년까지 “너의 삶이 아름다웠노라” 말씀하시리라 믿습니다.
강 장로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 저희들이 모두 작은 강낙원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강 장로님, 어제까지 매섭던 날씨도 오늘은 장로님의 인품처럼 포근하군요.
금당실 동편 돈두들 들녘은 봄기운이 돋아나 새싹이 움트고 있습니다.
뒷내 냇가를 거닐던 장로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오늘 그토록 아끼던 고향 금곡교회 마당에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려는 문상객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것을 보고 계십니까.
동지메기 뒷줄기 유택으로 가는 꽃상여 뒤를 따르는 조문 행렬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리고 보고 계십니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시구처럼 강 장로님을 흠모하는 저 많은 사람의 전송곡을 들으며 돌아가십시오.
소리 없이 통곡하는 5남매, 이별을 아쉬워하는 교인 지인들의 손을 사뿐히 내려 놓고 영생복락의 저 천국으로 가 편히 쉬십시오.
강 장로님! 추모의 정 안으로 삼키며 엎드려 전송하옵니다.
2012년 2월 20일 김 정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