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아침에는 차가운 공기와 한낮에는 뜨거운 햇볕이 공존하던 10월 가을......
길거리의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잎만큼이나 다양한 예천의 축제가 막을 열었다.
나의 고향은 안동이다.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모든 학교를 마쳤고, 이 곳에 발령을 받기 전까지 예천은 그저 용문사가 있고, 양궁으로 유명한 조그만 시골인줄로만 알았다.
그래서인지 곧 축제가 시작되니 준비를 철저히 하라시던 면장님 말씀에도 그냥 조그만 하나의 행사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축제를 앞둔 2주전부터 모든 직원들의 손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용문면 부스를 꾸미기 위해 초등학교 때나 해보았던 색색의 종이로 포장을 하고, 늦은 밤은 물론 주말까지 반납하고 모든 직원들이 출근하여 전시할 과일과 채소들을 닦고 하는 것을 보며 단순한 행사가 아닌 예천군 전체 큰 축제라는 것이 점점 실감나기 시작했다.
우리농산물축제는 예천군민의 종합축제로 1999년부터 군민의 날인 10월16일을 전후로 하여 우리음식 맛 자랑대회, 농산물 품평회와 시식회, 노인 축제 및 예천문화제, 군민 체육대회 등과 함께 군민제전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드디어 14일 축제를 알리는 군수님의 테이프 컷팅식과 함께 추수감사제로 축제가 시작 되었다. 축제장인 공설운동장을 찾은 나는 큰 규모에 놀라고 축제장을 찾은 많은 인파들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신종플루로 타 지역의 많은 축제들이 취소되고 있던 상황이라 축제장을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이 정확하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축제장을 둘러보면서 각자 자신의 면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직원들의 노력과 전시한 여러 가지 농산물들을 보면서 결실을 맺기 위해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했을 농민들의 땀방울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축제장 여기저기에서는 비빔밥 퍼포먼스, 우리음식 및 생활문화 체험전 등 축제기간 내내 다양한 행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축제는 우리 예천군민의 화합의 장 일 뿐 아니라 축제장을 찾은 도시민들과 출향민들이 좋은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 할 수 있고 우리 예천의 특산품들을 더 알리고 홍보할 수 있는 홍보의 장이기도 했다.
드디어 축제는 16일 군민제전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헬기와 색색의 풍선들이 우리들의 축제를 축하해주었고, 서로 자신의 읍?면을 뽐내기 위해 준비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징물들은 우리 예천 군민뿐 아니라 예천을 찾은 출향민, 도시민들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었다.
특히 올해는 군수님의 임기 마지막 군민제전이라 이제까지 우리 예천을 위해 노력하신 군수님에게 예천군민 모두가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발령을 받고 노인업무를 받게 된 나는 이번 우리 면에 상을 받게 되는 할아버지들을 인솔하기 위해 찾은 행사장 다른 한 켠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건강 체조를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과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된 수지침 봉사단 등을 보면서 역시 충효의 고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궂은 날씨로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축제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좋은 성과로 마칠 수 있었다.
발령을 받은 지 어느덧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 동안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또 앞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테지만 이번 축제 기간 동안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은 아마 내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함께 준비하고, 고생하면서 동료애라는 것을 배웠고, 군민제전에서 함께한 군민들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보며 화합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제 예천의 축제는 겨우 서막만 올랐을 뿐이다.
앞으로 도청 유치와 우리들의 저력으로 더욱 더 발전할 예천과 그 울타리 안에서 함께 발전할 미래의 나의 축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오늘 바로 이 순간 예천의 군민이자 공직자인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